별거 아닌 듯 삶의 질을 높여주는 물건들

한국인에게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을 말해보라고 하면 손에 꼽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빨리 빨리'가 신조인 나라에서 그때그때 달라요~ 하는 싸데펑의 나라, 뭐라도 하나 등록하려고 하면 제멋대로 긴 시간이 걸리는 나라로 와서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뜨겁고 얼큰한 국물, 알싸하게 매운 음식 그리울 때 제대로 된 대체 음식 하나 찾기 힘들다는 건 두말하면 입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에서보다 더 편한 점, 물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한국에서는 흔히 쓰지 않고, 별거 아닌 듯하지만 은근히 삶의 질을 높여주는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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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샤워 가운

프랑스에서는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대부분 자기 샤워 가운을 사용한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집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은 직사각형 수건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돌잔치나 결혼식, 회사 창립기념일 등등 각종 잔치에서 받아 온 스탠다드 사이즈의 수건, 다들 집에 수도 없이 있을 것이다. 한국 본가에 가면 뭐라도 기념 글귀 하나 안 박힌 수건 찾기가 어려울 정도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생활할 때 샤워 후 작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겨우 욕실에서 방까지 가기 위해, 수증기로 가득 찬 욕실에서 아직 축축한 느낌이 남아있는 몸에 옷을 입는 것이 너무너무 싫었다. 그래서 몸 전체를 감쌀 수 있는 크기의 대형 수건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편리성 면에서 샤워 가운을 따라잡을 수 없다.

2. 라디에이터 겸 온열 수건걸이

한국어로 따로 부르는 용어가 있는지 몰라서 어설프게 번역해보았는데, 주로 욕실 벽에 설치하는 라디에이터이자 수건걸이이다. 1번에서 이야기한 샤워 가운과는 떼놓을 수 없는 조합이다. 히터로서 온도를 조절해서 데울 수 있기 때문에 난방의 효과도 있지만, 물기로 젖은 샤워 가운이나 수건을 걸어놓으면 뽀송뽀송하게 말라 개운한 기분으로 다시 쓸 수 있다. 겨울에는 젖은 샤워 가운을 말리는 용도 외에도, 샤워 전에 따뜻한 수건걸이에 가운을 걸어두면 샤워를 마치고 나서 따뜻한 가운을 입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해가 잘 들지 않거나 습한 욕실에 켜 두면 욕실의 습도를 어느 정도 낮출 수 있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렌트한 아파트나 집에 살고 있어 벽에 설치하기가 어려운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이동 가능한 휴대용 형태도 있다.

3. 식기세척기

청소, 빨래, 요리 다 크게 싫지 않은데 유독 설거지만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람, 혹시 나뿐인가. 분명 나 말고도 설거지를 유독 싫어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다고 믿는다. 한국에서 식기세척기를 쓰는 가정은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주로 사용하는 식기 종류 때문에도 더 그럴 것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양 식문화에서는 납작한 접시를 많이 사용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밥그릇, 국그릇, 어떨 때는 반찬 그릇까지 오목한 경우가 많다. 인간이 수세미로 오목한 곳까지 손을 넣어 빡빡 깨끗이 닦을 수 있는게 아니라 오목한 그릇을 식기세척기로 씻깅는 한계가 있고, 세로로 세워 꽂을 수 있는 납작한 접시와 달리 오목한 그릇을 뉘여 넣으려면 자리 차지도 많이 해서 덜 경제적인 듯 하다. 대신 설거지를 정말 싫어하는데 집에서 주로 납작한 접시를 사용한다 하는 경우에는 식기세척기 정말 강력 추천하고 싶다. 울며 겨자 먹기로 설거지하며 쓰는 시간과 육체적/정신적 에너지를 다른 생산적인 일에 쓸 수 있으니까 말이다.

4. 빨래 건조기

빨래 건조기는 최근에 한국에서도 조용한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건조기 써보면 왜 이제야 붐이 일어나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편리하다. 특히나 한국처럼 장마가 길고 여름이 습한 나라에서 건조기 없이 빨래를 널어서 말릴 경우에 잘못하면 금방 한 빨래라도 쉰내 나기 일쑤다. 겨울도 마찬가지로 해가 쨍쨍 비치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 그리고 나이드신 부모님이나 손목이 약한 사람들은 가뜩이나 물 먹어 무거워진 젖은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어 허공에 먼지를 몇 번씩 탈탈 털고 빨래 건조대에 너는 그 과정 자체가 생각보다 힘들다. 빨래 건조기를 세탁기 바로 옆이나 아래위로 설치하면 젖은 빨래를 바로 건조기에 넣고 길면 1 시간 반 정도면 뽀송뽀송하게 마른 옷으로 접어서 보관하거나 바로 입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드럼 세탁기에 포함된 자체 건조 기능도 써 봤는데 전용 건조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드럼 세탁기 건조 기능은 입으로 하- 하- 따뜻한 입긴 불어서 말린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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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 리스트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템으로는 로봇 청소기와 공기 청정기가 있다. 고양이 주인님을 모시고 있어 털 때문에 쓰게 된 물건들인데,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부터 쭉 쓰던 것이라 글의 주제와 맞지 않는 것 같아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로봇 청소기는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멍청한 짓을 해서 뒤치다꺼리를 하게 만드는, 뭔가 망나니 아들 같은 느낌이라 애매하기도 하고.

물론 프랑스 모든 집을 가정 방문해서 조사해본 것이 아니니, '프랑스에서는 다들 이런 물건들을 쓴다'라고 말할 순 없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이런 것도 없지, 구리다'는 것도 절대 이 글의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내 삶의 질을 알게 모르게 높여 주고 있는 물건들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글로 한 번 정리해본 것 정도로 재미로 읽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