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채식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와 프랑스인인 남편은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환경적인 이유, 윤리적인 이유, 그리고 건강상의 이유로 최대한 육류, 그중에서도 붉은 육류 섭취를 자제하려고 하는 편이다. 유제품, 달걀부터 모든 동물성 재료가 포함된 음식과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비건과는 거리가 멀고, 채식주의자라고도 할 수 없지만 가능하면 육류보다는 과채류와 곡식류, 그리고 어패류를 더 섭취하려고 노력한다. 둘 다 원래부터 육류를 그렇게 좋아하는 체질은 아니지만, 일부러 육류를 멀리하는 스타일은 더욱더 아니었다. 처음에는 웃기게도 넷플릭스에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재밌게 보고 (정작 봉준호 감독은 본인의 영화가 채식주의를 장려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했지만), 관련 다큐멘터리를 몇 편 더 보고 나서 건강을 위해서도 환경을 위해서도 가급적 육류 섭취를 줄이자고 함께 결정한 것이다.

"가끔 기력이 떨어질 땐 소고기를 먹어줘야 해" 하며 우리가 본가에 올 때마다 좋은 소고깃집에 데려가는 부모님에게는 이런 결정을 내렸노라고 말하지 못했다. 괜히 부모님과 관계에 문제를 일으킬 바에야 그냥 우리끼리 있을 때 고기를 먹지 말고 이런 특별한 경우에만 먹는 거로 하자고 암묵적으로 동의했을 뿐.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작품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 영혜가 채식주의를 선언했을 때만큼 우리 부모님이 폭력적인 반응을 보일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내심 내켜 하지 않을 거란 것쯤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톨레랑스" - 한국어로는 '관용'의 의미 - 문화로 잘 알려진 프랑스는 왠지 다르지 않을까. 사실 프랑스는 채식주의자가 살아남기에 굉장히 가혹한 나라 중 하나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음식들만 봐도 소고기에 적포도주로 만든 뵈프 부르기뇽 Boeuf Bourguignon, 닭고기에 적포도주로 만든 코코뱅 Coq au vin, 거위 간인 푸아그라 Foie Gras, 고기나 간 등을 갈아 향신료와 섞어 가공한 파테 Pate, 등등 육류가 주를 이루지 않는가. 거기다 프랑스 음식문화 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선정되는 등 이런 음식들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자부심 역시 대단해서, 채식주의자들에게는 거의 배타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채식주의에 대한 인식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뵈프 부르기뇽. 와인에 오랫동안 뭉근하게 익힌 소고기 요리. 손님 접대 음식으로 많이 내놓는다.

한국에서는 본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부모님과 가끔 만날 때 한 번씩 고기를 먹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프랑스에서는 시댁 식구들과 가까이 살며 자주 왕래하다 보니 자연히 육류 섭취를 줄이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인에게 "나는 고기를 적게 먹기로 했어."라는 것은 "난 앞으로 굶기로 했어."와 비슷하게 들리는 것일까. 반응은 예상한 대로였다. 기본적으로는 우리의 결정을 존중하시지만, 같이 식사할 때 우리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거나 많이 먹지 않으면 섭섭해하는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다. 남편의 사촌동생 중 한 명은 우리처럼 고기를 "덜" 먹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비건"인데, 가족 행사 때마다 식사 시간에 곤욕스러워 하는게 눈에 띌 정도다. 샐러드를 제외하면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가 단 하나도 없을 때가 많은 데다, 프랑스에서 오래간만에 가족들이 모여 식사할 때는 식사 시간이 두세 시간씩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남들이 바쁘게 음식을 먹는 동안 비건인 동생은 혼자 멀뚱멀뚱 앉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채식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3퍼센트 정도로 몇 년 동안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채식주의협회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우리 부부처럼 육류 섭취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플렉시테리안 Flexitarian"의 비중이 작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거기다 2016년 4월 기준 프랑스 내 100% 채식주의 혹은 비건 레스토랑의 숫자도 기존 1,228개에서 6개월 만에 1,691개로 늘어나는 등 어느 정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틈새시장에 불과했던 채식주의가 라이프 스타일의 여러 옵션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프랑스의 식품환경노동위생안전청(ANSES)에서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완벽한 프랑스 식단"이라는 것을 만든 다음 실제 프랑스인들이 섭취하는 식단과 비교해 프랑스 식단의 문제점을 꼬집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프랑스인들의 식단에서 렌틸콩이나 병아리콩 같은 콩류는 너무 부족하고, 붉은 육류나 햄, 베이컨, 소시지 등 가공 육류의 섭취는 과도하다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붉은 육류 섭취는 일주일에 500g을 넘지 않도록 하고, 일주일에 두 번은 생선을 먹고, 가공 육류는 최대 25g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햄, 소시지, 베이컨, 파테 등의 가공 육류 Charcuterie 를 줄이는 것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했는데, 프랑스인들이 매 초마다 2.2kg, 연간 7만 톤에 달하는 소시송 Saucisson - 말린 소시지 - 을 섭취한다는 걸 생각하면 가공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말린 소시지, 소시송. 요리 재료로 쓰이기 보다는 식전주인 아페리티프 Aperitif 와 함께 간단히 먹는 아페로 Apero 로 주로 먹는다.

프랑스 음식이 좀 입맛에 안 맞았으면 좋았으련만, 입맛에 딱 맞기만 하면 맛있는 것들로 가득 찬 천국이나 다름없는 이 곳에서 "건강하게 먹기"란 쉽지가 않다. 개인적으로 붉은 육류를 비롯한 육류는 양을 줄이고, 우유와 요거트는 아예 먹지 않고 있지만 치즈는 아직까지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채식주의와는 관계없지만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은 흰 밀로 만든 프랑스 전통 바게트는 아마 앞으로도 오래 동안 끊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끊을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인지도?) 채식을 하면 그만큼 환상적인 프랑스의 음식들 중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채식주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채식주의가 프랑스 음식 문화에 대한 반발도, 배신도 아니며 프랑스 음식에 대한 모욕도 아님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는 이미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정립된 편이지만, 채식주의에게만은 여전히 유독 혹독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건강을 위해서든, 공장식 축사에서 고통받고 있는 동물들을 위해서든, 혹은 동물 분뇨와 메탄가스 등으로 인해 오염되고 있는 환경을 위해서든, 어떤 이유에서건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혹은 육류를 줄여나가기로 결심한 이가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므로 응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결정을 존중해줄 수 있는 성숙한 문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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