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버터!

- 프랑스의 버터 대란과 버터 파스타

지난 10월 말, 프랑스 시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사건이 있었다. 버터 부족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장을 보러 갔다가, 텅텅 빈 버터 코너를 뒤로하고 별도리 없이 빈 손으로 집으로 돌아온 이가 나 하나 뿐은 아니었을 것이다. 뉴스 매체들은 앞 다퉈서 버터 부족 사태를 위기 상황으로 포장하여 보도했고, 프랑스의 누리꾼들은 “#버터게이트" #beurregate 를 트렌딩 해쉬태그로 만들고 다양한 패러디 물들을 만들어 냈다. 피가로지에 따르면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악”의 버터 부족 사태라고 할 정도니, 버터 대란 Butter Crisis이니 버터 게이트니 하는 말이 단순 우스갯소리는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텅 빈 버터 코너의 모습 / 사진: NY Times

버터가 부족한 게 무슨 대수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인들에게 버터가 없는 삶이란 상상하기 힘든 디스토피아와도 같다.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크루아상과 같은 페이스트리류의 간식들 - 프랑스에서는 비에누아즈리 Viennoiserie 라고 부르는 - 과 더불어 형형색색 모양도 맛도 다양한 각종 디저트류 역시 버터 없이는 만들 수가 없다. 나 역시 건강을 생각한답시고 각종 노버터 레시피를 다 시도해 봤지만 결과는 매번 처참했다. 맛이 없거나, 모양이 안 나오거나.

국제 유제품 연합 (the International Dairy Federation)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면 작년 한 해 프랑스에서 1인당 소비한 버터의 양이 약 8킬로 정도였다고 한다. 유럽 연합 평균의 두 배, 미국의 세 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런 버터 덕후 나라에서 상황이 이렇게 되자 특히 프랑스 내에서도 버터의 성지로 불리는 지역인 브리타니에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브리타니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크레페와 솔티드 버터 캐러멜로 유명한 지역이다. 누구라도 추측할 수 있듯이 크레페와 버터 캐러멜을 만들려면 당연히 다량의 버터가 필요하다. 이 두 가지 메뉴보다 덜 알려지긴 했지만 브리타니 지방의 향토음식(?) 혹은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는 퀴냐만 Kouign Amann 은 이름의 뜻 자체가 브리타니 지역 방언으로 “버터케이크,” 말 그대로 버터로 만든 케이크라는 뜻일 만큼 버터가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다. 맛은 말해 뭐하겠는가. 디저트나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베이킹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버터와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은 사악하게도 맛이 없기도 힘들다는 것을.

버터 가득, 악마의 디저트, 퀴냐만 / 사진: positiveeatingpositiveliving

한국에서도 이런 전국적 품귀 현상이 있었더랬다. 바로 허니버터칩 대란이다. 한 때 몸 값이 엄청나게 치솟기도 했던 이 과자가 나름의 셀링포인트로 내세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프랑스 고메 버터”를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프랑스 어떤 지역의 어떤 버터를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프랑스 버터를 사용했다는 것이 내세울 만한 장점이 될 만큼 프랑스 버터가 대단한가?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하겠다. 물론 전 세계 버터를 다 맛본 것이 아니니 프랑스 버터가 최고다 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프랑스에서 신선한 버터를 맛보고 나서 개인적으로 버터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은 사실이다. 신선한 버터는 기름지고 느끼하기보다는 향긋하고 산뜻한 느낌이 강하다.

버터 자체가 맛이 있으니 버터가 단순히 요리에 이용되는 여러 재료 중 하나가 아니라 주인공이 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버터 파스타 Pates au beurre 가 그중 하나다. 버터 파스타는 익힌 파스타에 버터를 적당량 (이라 쓰고 듬뿍이라고 읽는다) 곁들여 섞어 먹는 메뉴다. 요리라고 부르기에는 1. 물을 끓인다 - 2. 파스타를 익힌다 - 3. 버터를 넣고 섞는다의 3 스텝으로 너무나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그런데 이 단순하기 그지없는 메뉴가 많은 프랑스인들에게는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자 소울 푸드라는 사실. (물론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나 서양 문화권에서도 인기 있는 스테디셀러 메뉴!) 입이 짧은 어린이들도 버터 파스타는 군말 없이 맛있게 잘 먹고,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도 버터 파스타는 쉽게 해 먹으니 굳이 한국 음식에 비교를 하자면 라면이나 간장 계란밥 정도쯤의 포지션이 아닐까.

다시 버터 대란으로 돌아와, 왜 이런 품귀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항간에서는 중국에서 크루아상을 비롯한 프랑스 페이스트리 붐이 일어나면서 프랑스 버터 품귀 현상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중국의 어마어마한 인구 수준이라면 가능한 일일까 싶기도 하지만, 프랑스 내에서는 버터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우유 생산량과 더불어 생산자인 낙농업계와 배급자인 소매상인들 사이의 갈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2016년 중순부터 올여름까지 유럽의 우유 생산량은 계속 줄어든 반면 버터에 대한 수요는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올라가는 추세다. 이에 따라 버터의 가격이 2016년 4월 1톤 당 2,800 달러 선에서 지난 9월에는 8,000 달러로 급등하게 된 것이다. 또한 프랑스 농산부 장관은 까르푸 등 마트에서 버터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이유는 급등한 가격으로 버터를 구매하기를 거부하는 소매 업체들과 생산자 사이의 갈등 때문이지, 엄격히 말하자면 버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많은 프랑스의 시민들이 곧 다가 올 크리스마스 때 버터가 부족하지는 않을지 걱정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보다 더 전형적인 제 1 세계 중산층의 고민이 있을까 싶지만. 버터, 가격이 오를 수는 있어도 부족할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점쳐본다. 오, 나의 버터! 변치 마오!

(Photos via The NY Times, positiveeatingpositivel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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