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잘 자믄 무슨 재민겨

사랑하는 연인과 처음으로 동거를 하게 되거나 결혼해서 같이 살게 되면 저마다 걱정되고 두려운 부분이 있다. 생리 현상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상대방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생리 현상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걱정될 수도 있다. 프라이버시나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데이트 후 더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일상이 두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나는 잠자리가 가장 걱정이었다. 물론 나는 평소 머리만 대고 몸만 뉘면 어디서든 잘 자는 체질이다. 잠자리를 가리거나 예민한 편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과 같은 침대에서 생활해본 적이 없어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막상 지금의 남편과 동거를 처음 시작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힘든 점은 없었다. 서로 이불이나 침대 위에서 공간을 더 차지하려고 잠결에 경쟁 아닌 경쟁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은 갈수록 나아졌다. 그리고 애초에 이불을 뺏거나, 양팔과 다리를 대자로 뻗고 자는 습관이 있는 쪽은 나였기 때문에 적어도 내가 불편한 일은 없었다. 처음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말이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밤, 고요함을 뚫고 갑자기 남편이 "아악!!!!!!!!!!!!!!!!"하고 고성을 지르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당황한 듯 서 있었다.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보니 남편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뭐라고 중얼중얼 말도 하고 서 있지만 잘못 보면 귀신 들린 사람 같기도 하고, 깨어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나도 처음 겪는 일이라 너무 무서웠지만, 남편을 잡고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하고 보니 지금까지 잠든 채로 소리도 지르고 벌떡 일어서서 걷기도 했던 것이었다. 남편은 잠꼬대+몽유병+야경증(Sleep Terror)까지 각종 수면 장애를 두루 섭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일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충격이 가시고 잊을만하면 한 번쯤 반기 행사처럼 일어나는 정도인데 대신 한 번 일어나면 그 날 숙면은 물 건너갔다고 보면 될 정도로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보통 몽유병 삽화는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난다. 이때 중얼중얼 무슨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알아듣기는 힘들다→내가 깜짝 놀라면서 따라 일어난다→놀라서 짜증이 난 내가 남편을 흔들어 깨운다 (남편은 여전히 악몽을 꾸고 있는 상태)→남편이 잠에서 깨고 내가 상황을 설명한 뒤 다시 잠자리에 든다.

이렇게 잠꼬대와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다니는 몽유병이 주를 이루지만, 많은 경우 소리를 지르는 등 야경증 증상도 동반된다. 악몽을 꾸다가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그런데, 악몽의 내용도 늘 비슷하다. 이런 이유로 혹시 심리적인 원인이 있는 게 아닐까 걱정도 했지만, 몽유병은 특별히 심각한 정신과적 문제나 심리적 이유와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몽유병의 원인은 주로 수면 부족이나 알코올 등 진정 물질, 특정 약물, 혹은 고열 때문이라고 한다. 술도 마시지 않고 특별히 먹는 약도 없는 남편의 경우에는 수면 부족이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실제로 같은 시간에 잠들어 같은 시간에 일어나도 남편은 항상 잠을 거의 못 잤다고 하는 경우가 잦다. 내가 남편보다 늦게 잠드는 날이나 새벽에 깨서 보면 항상 자고 있는데도 남편은 못 잤다고 하는 이유는 아마 깊이 자지 못하고 얕은 잠만 자기 때문인 걸까.

인간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적응의 동물'이구나 싶은 게, 어느덧 시간과 함께 이런 남편의 몽유병 증상에도 익숙해져 버렸다. 예전 같으면 잠에서 확 깨서 한참 동안 잠들지 못했을 텐데 요즘에는 남편이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도 잠결에 "얼른 자, 빨리 다시 누워. 그만해" 말만 하고 손만 휘휘 젓고는 금방 다시 잠들곤 한다. 그러고 다음 날 아침 기억도 나지 않으니 이만하면 적응의 동물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지. 그렇지만 아직도 깊게 자지 못하고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남편을 두고 나만 잘 자도 되는 걸까. 낮잠을 자고도 또 밤이 되면 쿨쿨 잘 자는 나지만 '혼자만 잘 자믄 무슨 재민겨' 이제는, 그러니까 2018년에는 나 혼자 잘 자는 것보다는 남편과 같이 잘 자고 싶다. 그리하여 올해의 목표는 "함께 잘 자기"로 정했다.

잠 자는 동안 서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손을 꼭 잡고 자는 해달처럼. 올해는 함께 잘 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