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 산다 - 인간의 적응기

어쩌다 보니 우리와 함께 살게 된 맥스. 약간의 적응 기간을 거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양이로서는 놀라운 속도로 우리 집에, 그리고 우리와 함께 사는데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고: 고양이와 함께 산다 - 적응) 맥스보다 적응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 건 남편과 나였다. 나름 어렸을 때부터 항상 반려견과 함께 살아왔지만, 고양이는 한 번도 키워본 적도 가까이해 본 적도 없는 나와, 한 번도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지만 그나마 친한 친구, 이웃집에 늘 고양이가 있었던 남편. 이렇게 두 사람 다 결국에는 이렇다 할 고양이에 대한 경험도 지식도 없이 덜컥 고양이와 동거를 시작하게 되어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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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가 집에 온 뒤로 제일 처음으로 느꼈던 것은 정말 우리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털이 많이 날린다는 것이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집사들이 뭐라고 얘기하든,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처음 며칠은 숨 쉴 때마다 고양이 털이 코로 입으로 들어와 목에 항상 뭔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들어 '혹시 나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건가...?' 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다. 목에 뭔가 걸린 듯한 이 느낌은 몇 주간 지속되다가 결국에는 사라졌다. 하지만 털이 갑자기 기적적으로 덜 날리게 된 것은 아닐 테니, 공기 중에 여전히 털은 날리지만 내 몸이 적응한 것이라고 봐야겠지. 

그나마 한가지 위안이라면 맥스는 사진 속 고양이보다 털이 짧아 이 정도는 아니라는 점일까? 사진/petlogue

털이 허공에서만 날리고 있다면 차라리 다행일 텐데, 고양이 털은 정말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아끼는 검은색 코트라던가, 스웨터, 열심히 차린 음식, 그리고 칫솔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곳에서 발견되곤 한다. 고양이 털은 부드러워서 테이프나 돌돌이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테이프처럼 접착 성질이 있는 스티커에 손잡이가 달린 그것)로 잘 떼어질 것 같지만, 의외로 고양이 털은 옷감 안에 박혀서 정말 완벽하게 없애기는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기청정기도 새로 들여보고, 각종 고양이 털을 획기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털 제거 용품은 다 써 봤지만 털로 뒤덮인 동물과 함께 살기로 한 이상 다 사후 조치뿐 근본적으로 털이 날리지 않게 할 방법은 찾을 수 없었다. 포기하고 털까지 사랑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해결법이었다. 그나마 드럼세탁기가 아닌 통돌이 세탁기를 쓰는 게 옷에서 털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또 필터가 있는 빨래 건조기를 같이 쓰면 한 번 더 털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두 번째,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야행성 동물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고양이는 고양이 집사라면 알만한 단어인 "우다다"가 기본 기능으로 탑재되어있다. 우다다는 낮에 실컷 잠을 자고 에너지를 충전한 고양이들이 밤에 에너지를 마구 발산하는 방법으로, 말 그대로 온 집안을 우다다 뛰어다니면서 에너지를 소비하는 행동을 말한다. '지금은 밤이고 모두가 자니까 조용 조용하게 다녀야지'라는 배려를 고양이에게 바랄 수도 없는 거겠지만, 우다다를 할 때는 자는 사람 이불 위로 뛰어다니기도 하고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넘어뜨려 우당탕 큰 소리를 내기도 해서 편하게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지금은 맥스가 예전보다 나이가 들기도 했고, 점점 우리 일정에 맞춰지기도 해서 밤에도 우다다를 하지 않고 잘 자게 되었다. 나이가 어린 고양이를 데려오면 정말 당분간은 밤잠을 포기할 큰 각오를 해야 한다. 특히 학교나, 직장 때문에 낮에 집에 사람이 없으면 고양이는 당연히 자연스럽게 낮에 잠을 많이 자게 되어 밤에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게 된다. 매일 밤 잠 들기 전에 고양이랑 한 15분 정도만 장난감으로 격렬하게 놀아줘도 우다다는 많이 줄일 수 있는 것 같다. 제일 확실한 건 우다다는 고양이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나아진다는 점이다.

파리에 사는 고양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디즈니 영화 아리스토캣의 한 장면. 고양이들이 밤만 되면 모여서 그렇게 파티를 한다. 사진/via GIPHY

세 번째, 내 손인데 아무 데나 둘 수가 없다. 이건 고양이의 일반적인 특성인지 맥스가 유독 특이한 건지 알 수 없지만, 맥스는 손이 뜬금없는 곳에 놓여있는 걸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타입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몸, 팔, 손이 모두 한눈에 자연스럽게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팔짱을 껴서 옆구리 쪽으로 손가락만 튀어나와 있다거나, 식탁 밑으로 손을 둬서 맥스 시선 기준 손가락만 보인다거나 할 때 가차 없이 손을 앞발로 공격하는 것이다. 손으로 휴대전화나 문을 잡고 있어서 (맥스 시선 기준) 손가락만 보이는 그런 상황도 여기에 해당된다. 맥스가 이런 '맥락 없는 손가락'에 예민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남편과 나는 절대 팔짱도 끼지 않고, 식탁에서도 항상 식탁 위로 손을 올리고 있는 등 자연스럽게 맥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쪽으로 적응을 해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맥스를 자주 보지 않는 친지나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항상 적어도 한두 명씩은 안타까운 피해자가 나타나곤 한다. 우리 부부는 팔짱을 끼고 있거나 식탁 밑으로 손을 내리고 있다가도 멀리서 맥스가 시선을 고정한 채 다가오는 게 느껴지면 맥스에게 보란 듯이 할리우드 액션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양손을 번쩍 들어 우리의 "결백"을 증명하기도 한다. 맥스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심한 편이었던 물거나 할퀴는 습관은 이제 많이 없어졌지만, 그중에서 유일하게 고치지 못한 게 바로 이 부분이다. 다른 고양이들도 다 그러는지 정말 궁금하다.

판사님 저는 절대 손을 아무데나 두지 않았습니다. 결백해요. 사진/lead

마지막은 다른 고양이들도 다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맥스가 가진 특이한 신체 특징도 있다. 바로 눈곱과 코딱지가 많이 낀다는 점이다. 보통 강아지나 고양이들도 사람처럼 어느 정도 눈곱이나 코딱지가 생기기는 한다. 그래서 한국에 살 때 다른 고양이들을 임시 보호로 데려와서 같이 생활하기 전까지는 맥스가 특이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맥스만 외동으로(?) 키울 때는 고양이 화장실 모래에 먼지가 많이 날리면 눈곱이나 코딱지가 심해질 수 있다고 해서 매달 다른 모래로 바꿔가면서 맥스에게 맞는 모래를 찾으려고 노력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같은 모래를 쓰는 다른 고양이들은 항상 깨끗하고 반질반질한 코에 깨끗한 눈을 유지하는데, 유독 맥스만 눈곱이 끼고 까만 코딱지가 분홍색 코에 잔뜩 끼는 걸 보고 뭔가 다르구나! 처음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다 이번에 새로운 동네에서 처음 간 동물 병원 수의사로부터 "맥스는 눈꺼풀 모양에 약간 기형이 있어 눈곱이 잘 끼겠네요. 코도 아마 같은 이유로 쉽게 더러워질 것 같아요."라는 진단을 처음 듣게 되었다. 생활에 지장이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맥스의 매력 포인트인 아몬드 모양의 눈 때문에 눈곱과 코딱지가 생기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 일로 맥스와 함께 산 지 몇 년이 되어 나름 초보 집사는 면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직 알아갈 것 투성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느 모래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던 내 마음에 '적어도 이제 모래 탓은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하는 평화도 함께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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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고양이의 바디랭귀지를 읽지 못해서 맥스와 팽팽한 갈등 관계를 겪기도 했다. 예를 들면 나는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와서 앙 물고 간다거나 툭 치고 가는 게 공격적인 성향인 줄 알고 무조건 다그치기만 했는데, 그게 맥스 나름대로 놀아달라고 먼저 장난을 거는 신호였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돼 그동안 혼냈던 게 미안했던 적이 있다. 또, 이유 없이 토를 하거나 (고양이가 토를 할 때는 음식이나 건강 상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강아지보다는 토를 더 자주 하는 것 같긴 하다) 산책 후 돌아온 맥스 몸에 처음 보는 생채기가 나 있을 때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스러웠던 적도 수두룩하다. 또 게으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가 생활 전반에서 고양이가 생활하기에 안전한, 또 고양이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부지런해졌다는 것도 큰 변화다. 특히 요리할 때도 음식을 뚜껑으로 덮거나 치워두지 않으면 고양이가 언제 어디서 슬쩍 나타나서 먹어치울지 모른다. 그 깨달음은 달걀 여러 개를 곱게 풀어 두고 잠시 다른 일을 하다가 돌아와 보니 맥스는 만족한듯 입맛을 다시고 있고 그릇은 바싹 말라 있었을 때 처음 얻게 되었다. 

방랑벽이 있는 우리 부부가 이제는 캣시터를 구하기 전까지는 쉽게 여행 계획도 마음대로 짤 수 없다. 두 번의 한국-프랑스 간 이주를 하면서 우리를 위한 서류 준비보다 맥스를 위한 서류 준비가 더 어렵고 오래 걸리고 복잡하다는 걸 경험하기도 했다. (더 비싸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 생활에 큰 변화가 생겼지만 그럼에도 몇 해 전 그 날 맥스를 입양한 것을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는 것은 고양이라는 존재가 주는 그 편안함과 안정감,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바로 이 순간에도 노트북 앞에 벌렁 드러누워 골골송을 부르는 맥스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Max, je t'aime f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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