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그레잇 & 스튜핏 구매 feat. 저축요정 생민쓰

한국에서는 각종 드라마, 예능을 요일별, 시간대별로 줄줄 꿰어가면서 보던 TV덕후였지만 해외 생활을 하면서 한국TV와는 점점 멀어졌다. 한국에서는 간단히 TV만 틀면 본방, 재방에, 삼방에, 이제는 IPTV 다시보기까지 가능하지만 해외에서는 한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 들여야하는 노력이 꽤 크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 간간히 한국 드라마나 예능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팟캐스트를 즐겨 듣고 있다. 그 중에서도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그리고 비보에서 파생되어 나온 김생민의 영수증까지. 이런 팟캐스트를 듣다보면 일주일이 금방 가는 느낌이다. 최근에는 김생민의 영수증이 정규 편성까지 되어, 귀찮음을 무릅쓰고 방송까지 챙겨보고 있다. 

KBS에 정규 편성된 김생민의 영수증 한 장면

김생민씨가 이렇게 오만상 인상을 쓰면서 "스튜핏!"을 날리면서 대안을 제시할 때 청취자 그리고 시청자 입장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결혼을 앞두고 페디큐어를 받은 예비 신부에게 신발과 긴 드레스에 가려져 굳이 보이지 않는데 페디큐어를 받았어야 하냐며, 허니문에서 해변 인증 사진을 찍고 싶으면 발가락을 모래에 묻고 찍어라 하는 식의 조언을 해 주는 것이다. 웃음을 위해 간혹 억지스러운 조언을 하는 것 같아보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내가 이렇게 "스튜핏"하게 생각없이 하는 소비는 없는가 돌아보게 하는 효과는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저축요정 김생민의 기를 받아 2017년 내가 소비한 물건들 중에서 "그레잇"한 소비와 "스튜핏"한 소비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돌아보려고 한다. (물론 내 기준에서 말이다. 김생민씨 기준에는 다 스튜핏일 것 같아서 말이지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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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잇!

1. 아마존 킨들

올 초에 이번 해는 독서를 열심히 해보겠다는 결심과 함께 구매한 아마존의 E-Book 리더, 킨들. 사실 새해 결심으로 "독서를 많이 하겠다."라고 목표만 세운게 벌써 몇 년 차인가. 무거운 책을 가방에 넣고 들고 다니려니 힘들다, 킨들이 있으면 가벼우니 어디든 들고 다니면서 왠지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킨들은 조명도 들어오니 (페이퍼화이트 이 후 모델 기준) 어두운 곳에서도 읽을 수 있다 같은 소리를 하며 킨들을 구매하면서도 속으로는 '아 왠지 이거 몇 번 보고 말 것 같은데'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 불안감이 무색하리 만큼 올 한 해 동안 킨들로 그 어느때보다 많은 책을 읽었다. 킨들을 포함한 이북리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확실히 이 전보다 독서량이 늘었다는 점인데, 나 역시도 동감한다. 킨들을 사기로 결심하기 전 까지만해도 종이책 특유의 느낌과 종이에 인쇄된 활자가 더 읽기 편하다는 생각을 늘 했는데, 킨들 디스플레이는 정말 상상 이상으로 종이와 비슷하다. 페이퍼백 같은 거치지만 따뜻한 느낌은 아니고, 흰 종이에 깔끔하게 인쇄된 느낌이긴 하지만 눈 시린 디지털 화면의 느낌은 절대 아니라는거. 

저축요정 생민씨는 "아.. 킨들, 꼭 사야만 했나요? 책을 읽으려면 도서관에 가서 빌려 보면 0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내 나름의 변명이 있다. 해외에 살면서 한국에서 출판된 책을 읽으려면 가끔 놀러오는 가족, 친지들에게 부탁하거나 혹은 비싼 값을 주고 해외 배송을 하거나 해야한다. 한국에 갔을 때 잔뜩 사 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한국 책들은 또 왜 이렇게나 무거운지. 이북 리더가 있으면 그런 걱정 없이 손쉽게 한국 책을 이북 리더에 받아 읽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이북으로 출판되지 않은 경우에는 방법이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배터리가 엄청 오래 간다. 24시간 내내 책만 읽는 사람이 아닌 이상 밖에서 읽다가 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구입 모델: Kindle Paperwhite (광고 포함 와이파이 버전)

구입처: Amazon.com

구입시 가격: $99.99 (원 가격 119.99불이지만 99.99불로 자주 세일함)

2. 필립스 원블레이드

사진/Philips

필립스 원블레이드는 내가 아니라 남편을 위해서 구매한 물건이다. 개인적으로는 수염을 바짝 면도한 민낯 보다는 수염을 길게 기른 남편의 모습을 더 좋아하지만, 남편은 직장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며칠에 한 번씩은 면도를 해야한다. 문제는 피부가 너무 예민해서 한 번 면도하고 나면 며칠 동안은 얼굴에 온갖 트러블이 난다는 점이다. 이제 좀 트러블이 가라 앉았나 싶으면 수염이 자라서 또 면도를 해야하니, 피부가 쉴 틈이 없는 것. 그래서 각종 면도기를 다 써 봤고, 집에는 애프터쉐이브가 쌓여있지만 확실하게 피부에 자극이 덜 가는 면도기나 도움이 되는 애프터쉐이브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털 많은 프랑스인으로 태어난 이상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수염인데, 여지껏 면도기 하나에 정착하지 못한 유목민이라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러다 까르푸에서 우연히 매대에 진열된 필립스 원블레이드를 보았다. 일반 면도날과는 모양부터 다른 것이 왠지 날의 생김새만 봤을 때 피부에 자극이 덜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격마저 30유로가 채 안돼 부담 없이 사서 시도해보고 아니라면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을 정도. 저렴한 가격이지만 나름 헤드 교체형에 전기 충전식이라 맞기만 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구매했고, 결과는 예상 적중. 면도 직후에 얼굴이 울긋불긋하게 변하지 않은 남편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워낙 피부 자체가 예민하다보니 자주 연달아 사용했을 때는 얼굴에 뾰루지가 몇 개 올라오기는 했지만 확실한 건 예전 만큼은 아니다. 단, 수염 자국 하나 없이 아기 피부 처럼 맨들맨들하고 깨끗하게 면도해야하는 사람이라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원블레이드 프로 모델도 있다고 하던데, 다음에는 프로 모델을 선물해볼까 싶다.

구입 모델: Philips OneBlade

구입처: 까르푸 매장 (아마존, 필립스 웹사이트 등에서 구매 가능)

구입시 가격: 약 25유로 (교체용 면도날이 몇 개 들었냐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는 듯 함)

스튜핏!

1. 메루나 생리컵

지난 9월쯤이었던가 한국에서 생리대에서 유해 물질이 검출 돼 논란이 되면서 늘 생각만 하고 미루고 있던 생리컵을 드디어 시도해보기로 했다. 생리컵의 장점을 나열하자면 엄청 긴 리스트가 될 것이다. 내가 가장 끌렸던 부분은 잘 맞는 "골든컵"을 찾기만 하면 샐 염려 없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다는 점과 생리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생리컵의 단점이라면 내 몸에 꼭 맞는 "골든컵"을 찾아야 수 많은 장점들을 완전히 누릴 수 있다는 것. 생리컵을 사기 전 부터 생리컵에 적응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노력해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탐폰을 계속 써왔기 때문에 막연히 '탐폰이랑 크게 다르기야 하겠어?'하는 자만심이 있었던 것 같다. 세 달이나 꾸준히 생리컵을 꼭 써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결국에는 늘 써 왔던 탐폰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실패 이유는 메루나 생리컵이 나에게 맞지 않았던 것. 특히나 메루나 클래식은 다른 생리컵과 비교했을 때 경도가 낮은, 그러니까 말랑말랑한 편이라 생각보다 단단한 자궁 경부에서 잘 펴지지 않아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것은 생리컵 자체가 스튜핏한 소비는 아니라는 점이다. 나에게 딱 맞는 골든컵을 찾기 까지 여러 생리컵을 시도해보는 것이 보통이다. 대신 내가 한 번 썼던 생리컵은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없어 쓸모 없는 실리콘컵이 되고 말기 때문에 '스튜핏'으로 분류한 것 뿐이다. 경도가 높은 다른 생리컵을 사서 시도해보고 적응이 되면, 이 후에 다시 말랑한 메루나 클래식으로 갈아탈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은 옷장 속에 고이 모셔두었다. 

구입 모델: Me Luna Classic

구입처: Me Luna

구입시 가격: 배송까지 합해서 약 19유로

2. 어반디케이 네이키드 팔렛트

사진/Urban Decay

새로운 아이섀도우 팔렛트를 살 때면 항상 이게 내 마지막 팔렛트라는 마음으로 산다. 판매원들도 '팔렛트 색상이 다양해서 간단한 데일리부터 화려한 메이크업까지 다 가능하기 때문에 이 팔렛트 하나만 있으면 다 해결돼요'라는 식으로 나를 꼬드긴다. 어반디케이 네이키드 팔렛트도 그럴 줄 알았다. 첫째로는 인터넷에서 너무 좋은 리뷰를 많이 봤고, 얼핏 보기에도 색상도 다양하고 유용해보이고, 양도 많아보여서 쓰다 쓰다 자식한테 물려줘도 될 것 같았다. 한 가지는 맞았다. 자식한테 물려줘도 될 거라는 거. 왜냐면 내가 안 쓰기 때문에. 

실제로 네이키드 팔렛트를 처음 사서는 나름 이래저래 잘 써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너무 내 취향 이상으로 반짝이가 심한데다가 생각보다 가루날림도 심했다. 도구가 문제인가 싶어 브러시를 바꿔가면서 써 보기도 하고 신이 주신 가장 좋은 도구라는 손도 써 봤지만 가루날림은 구제 불능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묘하게 모든 색들이 내 피부톤이랑 어긋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네이키드2를 샀어야 하나, 네이키드3을 샀어야하나 죽은 아이 이 세듯이 후회해보지만 사실은 어반 디케이 네이키드에 대한 마음 자체가 아예 사라져 버린게 맞겠다. 그리고 최근 취향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예전보다 화장을 연하게 하게 돼서 네이키드 팔렛트는 정말 말 그대로 "스튜핏"한 구매가 되고 말았다.

구매 모델: Urban Decay Naked

구매처: 세포라

구매시 가격: 약 50유로